[1471 ~ 1540] 조선의 무신, 의관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실(子實), 호는 송당(松堂).
양녕대군의 외손으로 무예에 뛰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21살에
이극균(李克均)의 건주위 토벌에 종군하였고, 이듬해(성종23, 1492)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연산군이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선산으로 돌아갔다. 정붕(鄭鵬)과 교유하여《대학(大學)》과 경전을 배웠다.
중종반정 후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조방장이 되어 이를 평정하였고, 황간현감, 강계부사, 의주목사를 거쳐 승지가 되었다. 기묘년(1519)에 병조참판이 되었으나 소인들이
조광조(趙光祖)를 미워하는 것을 보고 병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성절사로 북경에 갔으므로
기묘사화를 모면했다.
1520년 김해부사로 강등되었다가 무고로 친국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16년간 두문불출하며 학문에 전념하다가 정유년(1537)에 경상좌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주역》과 천문지리에 연구가 깊었으며, 특히 의술에 능하였다. 시조 한 수가 전한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