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간쑤성[甘肅省]·산시성[陜西省] 지역에 있던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국가(
1032 ~
1227년).
탕구트족은 티베트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유목 민족이었는데, 처음에는 쓰촨성[四川省] 서부에 자리를 잡고 살았으나 차츰 쫓겨가 칭하이[靑海]·닝샤[寧夏]를 거쳐 간쑤[甘肅]로 이동했다.
881년 이들의 우두머리인
탁발사공이 당나라의 관리로 임명된 뒤,
883년 황소의 난 때 큰 공을 세우고 당나라로부터 이씨 성을 받아 그 뒤 이씨 왕조가 이어졌다.
1038년까지 서하는
송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었으나 같은 해
이원호가 간쑤 지방을 손에 넣고 송나라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이원호는 나라 이름을 '대하'라 정하고 스스로를 황제로 높였으며 영토를 넓혀 당시의 하주·은주 등 10여 주를 지배했다. 나라 이름 중 '하'는 중국의 고대 왕국인 하나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이들이 스스로 '대하'라고 했던 것에 반해 송나라에서는 '서하'라고 불렀다.
서하는 동쪽으로
송나라, 북쪽으로 거란족이 세운 나라인
요나라, 서쪽으로
위구르, 남쪽으로
티베트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면서 송나라·요나라와 대립했다.
서하가 차지하고 있던 지역은 중앙 아시아와 서양 각국을 잇는 무역로가 지나가는 동서 교통의 요지로서 그에 따른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경제적으로 크게 일어날 수 있었다.
이들은 본래 유목 민족이었으나 농사도 함께 지었으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
서하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서하 문자는 1036년에 공포되어 이후 400여 년 동안 사용된 서하인들만의 문자였다. 한자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뜻을 나타내는 표의 문자였는데, 서하의 국민이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하 문자로 기록된 문서·불교 경전·문학 작품 등이 많이 전해지고 있어 그를 통한 연구 끝에 지금은 거의 모든 글자가 해독된 상태이다.
정치 제도는 처음에는 송나라의 것을 모방했으나 차차 서하의 사정에 알맞은 형태로 바뀌었다. 지방 제도는 4부, 11주, 7군, 6현, 8진으로 나뉜 듯하다.
신앙으로는 불교가 크게 일어나 그에 대한 일을 맡아보는 관청을 세우기도 했고, 서하어로 번역된 각종 불교 경전, 절과 탑, 불교 미술 작품 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