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 ~ 1922] 구한국 말의 의병장.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895년(고종 32년)
을미사변으로 명성 황후의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 강릉에서 의병을 일으켜
최중봉·
이경보 등과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옥에서 죽었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경기도 여주에서 거의한 뒤 병력을 이끌고 원주·평창·진부를 거쳐 1896년 1월 강릉에 진출하였다.
경유지에서 많은 수의 의병을 모았으며, 강릉에서 포수들을 모아 관동구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義所) 의병진을 설치하고 핵심적 인물로 활동하였다. 3월 개항장인 원산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기밀이 누설되어 실패하고, 고성·양양 등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한편, 포유문(布諭文)을 돌려 흔들리는 민심을 수습하기도 하였다. 7월 함경도 의진과 제휴하여 제2차원산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8월초 500여 군사를 이끌고 강릉을 떠나 회양(淮陽)·금성(金城) 방면에 진출, 격전을 벌였다.
저서로는 『복재집』·『병신일기(丙申日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