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6 ~ ?] 조선 선조 때 수군의 장군. 전남 나주 출신.
1583년(선조 16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 등을 지냈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낙향하여 지냈다. 그러다가 1591년(선조 24년) 전쟁이 임박함을 듣고 전라좌수사인
이순신을 찾아가
거북선의 우월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처음 만남으로 나대용의 재주를 알아본 장군은 그를 전라좌수영의 전선을 건조하는 군관으로 임명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나대용의 군선 정보에 이순신 장군은 귀를 기울였고, 그에 힘을 얻은 36세의 젊은 나대용은 거북선 제작에 착수해 뜨거운 열정을 발휘한다. 1년간의 연구와 제작에 힘을 쏟아 1592년 3월 27일 임진왜란을 며칠 앞두고 드디어 거북선이 완성되었다.
이후 충무공 밑에서 병선 (兵船) 건조 책임을 맡고, 옥포, 당포, 사천 등 여러 해전에도 참가하여 왜적을 무찌르는 데 공이 컸다.
나대용이 거북선의 설계와 제작을 주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료가 부족하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하지만 나대용이 임진왜란 이후 창선(鎗船), 해추선(海鰍船) 등의 전선(戰船)을 개발했던 것을 보면 그가 바다와 배에 관한 전문가였음은 의심할 바가 없다. 나대용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당상관에 제수되었고, 1612년에 죽어 고향인 전남 나주시 문평면에 묻혔다.
• 창선(鎗船) - 나대용이 만든 군선으로 대형인 판옥선에 비해 중형급이다. 판옥선의 경우 노를 짓는 격군이 100명이 넘지만, 창선은 40여 명의 격군으로 운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