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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친구들이 좋은 소설 재료가 있으니 소설로 써 보라고, 바로 그 자신이 체험하였다는 이야기를 호소나 하듯이 신이 나서 들려주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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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나는 한 번도 소설로 써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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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보면, 그들에게는 모두 뼈가 아프도록 느낀 절실한 체험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에는 조금도 절실하게 들어와 맞히는 데가 없었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그 자신만이 느낀 통절한 체험이었을 뿐 나에게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A라는 사람이 어떤 여자와 실연에서 뼈가 아프도록 인생을 느낀 사실을 배가 고파서 눈이 한 치나 기어 들어가도록 인생을 느낀 B라는 사람에게 하는 호소나 다름이 없었다. 실연을 하고 뼈가 아프도록 인생을 느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요, 배가 고파서 눈이 한 치나 기어 들어가도록 인생을 느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될 수가 없음으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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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설가가 재료로 삼는 소설은 그럼 만인(萬人)이 다 같이 그런 사실을 체험했으리라고 인정이 되는 그런 사실만이라야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자기의 체험이거나 남의 체험이거나 그 어느 것이나를 막론하고 그것이 다 소설의 재료가 될 수 있다. 다만 요는 소설이란 인생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요, 인생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그 실연에 대한 호소라거나 기아에 대한 호소라거나 그런 사실 그것만으로는 한 개인의 일방적인 사실만인, 즉 인생의 일면만인 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그 개인의 실연의 원인이거나 기아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인생의 진실이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과거의 생활도 알아야 할 것이고 현재의 생활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등 생활 일체를 파악함으로써만(실연의 경우라면 그 여자까지도) 인생의 진실이 추구될 것이기 때문에 그 체험에 작가의 ‘공상(空想)’ 이 그것을 보편화시키지 않고서는 소설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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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생의 보편성 획득이야말로 그 작품의 성공을 말하게 되는 것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만일 그 작품에 보편성이 없다면 그 작품의 주인공은 인간의 전형(典型)으로서 생생하게 살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 전형의 창조, 바로 그것이 소설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자의 개성과 생명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간 산 개성의 유형(類型)을 거쳐 획득한 보편성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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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으면서 개성적인 인간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어서는 진실한 인간 생활의 본질이 추구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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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란, 그 체험에서 그 어떤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것이 소설의 소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체험이 내포(內包)하고 온 의미를 관찰과 사색으로 찾는 것이 창작의 소재인 것이다. 작가는 그 의미가 말하는 인생의 진실을 독자로 하여금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작자와 꼭 같은 의미를 느끼도록 써야 하는 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이른바 이것이 문학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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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문학적인 표현 기술이 부족하면 아무리 그 작자가 인생의 절실한 체험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인생의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느끼게 함으로써 공감을 사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을 나는 6·25사변과 우리의 문단이 잘 증명해 주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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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사변은 그 어떤 개인의 체험이 아니요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가 다 통절하게 체험을 하고 난 사변이다. 그러나 6·25사변을 취급한 작품이 그토록 통절한 느낌을 독자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깊은 의미에 있어서의 문학적인 기술, 즉 거짓말을 꾸미는 ‘공상’의 힘으로 그 어떤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지 못한 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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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소설을 쓰는 데 있어 체험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공상으로서의 문학적인 표현이 절대한 조건이 되는 것이므로, 공상으로 간주하고 공상과 체험을 전연 공상으로 공상화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본질적인 수업이 아닐까 한다. 공상은 의미를 찾는 자석(磁石)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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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가가 절실하게 느낀 체험을 소설화하려고 할 때에 나의 경험으로 보면 너무도 그것이 절실한 체험이기 때문에 공상의 여유를 주지 않고 체험한 그 사실 그저 그것만이 병에 물이 쏟아지듯 쉬임없이 붓끝으로 쏟아져 내려와 그 절실한 체험의 힘을 막아 낼 도리가 없어 저도 모르게 붓끝을 놀리다가 작품으로서 실패를 본 예가 있음을 기억한다. 작품이 이렇게 되면 한 개인이 느낀 사실만이 기록이 될 뿐 인생의 진실성 추구로서의 보편성을 잃고 말게 된다. 초심자는 특히 이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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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천이 되고 주의와 사상이 흘러감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추구되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저명하던 작가가 거의 무색하게 되는 데 있어서도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가 가장 우리에게 가깝게 되는 것은, 그 행문이 악문이면서도 그의 주인공들이 말하는 그 어떤 인생의 의미가 우리들의 영혼을 지금도 흔들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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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같은 시인도 그 작품「말테의 수기」에서 창작에 경험이 얼마나 지대하다는 것을 어떻게도 역설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이 어려서 시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인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70년 혹은 80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를 집적(集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겨우 최후에 약간 여남은 줄의 훌륭한 시가 써질 것이다. 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感情)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아니 젊어서 이미 남아 돌아갈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시는 정말로 경험인 것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는 허다한 도시 허다한 사람, 허다한 서적을 두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허다한 금수를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늘을 나는 새의 깃〔羽〕을 느끼지 않아서는 안 되고 아침에 피는 작은 풀꽃의 고개 숙인 부끄러움을 찾아내지 않아서는 안 된다. 또 미지(未知)의 지방(地方) 길〔道〕을. 뜻밖의 해후(邂逅). 멀리서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이는 이별(離別)-또 그런 의미가 붙들리지 않고 남아 있는 젊은 날의 추억. 기쁨을 가져다 주었는데도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마음을 슬프게 해 드린 어버이. 온갖 중대한 변화를 가지고 이상한 발작을 하는 소년 시대의 병(病). 물을 뿌린 듯이 가라앉은 고요한 방에서 지난 하루. 바닷가의 아침. 바다 그것의 자태. 저쪽 바다. 이쪽 바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함께 존재 없이 사라진 나그네 잠자리의 밤들. 그런 것들을 시인은 생각해 내지 않아서는 안 된다. 아니, 그저 모든 것을 생각해 내는 것만이라면 그것은 또 아무것도 안 된다. 하룻밤 하룻밤이 조금도 전날 밤과 같지 않은 밤마다의 규방의 일. 산부(産婦)의 부르짖음 소리. 하이얀 옷 속에서 푹 잠이 들어 그저 육체의 회복을 기다리는 산후의 여자. 시인은 그것을 추억으로 지니지 않아서는 안 된다. 죽어 가는 사람들의 베개 밑에 붙어 있지 않아서는 안 되고, 열어젖힌 창이 덜렁덜렁 소리를 내는 방에서 죽은 사람의 경야(經夜)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추억을 가지는 것만이라면 아무런 보람도 없는 것이다. 추억이 많아지면 다음에는 그것을 잊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또 다시 추억이 바뀌는 것을 기다리는 커다란 인내(忍耐)가 있어야 한다. 추억만이라면 아무런 보람도 되는 것이 없다. 추억이 우리들의 피가 되고 눈이 되고 표정(表情)이 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이미 우리들 자신과 구별할 수가 없이 되어서 비로소 뜻도 하지 않았던 우연(偶然)에서 한편의 시의 최초의 말은 그것들 추억의 한복판의 추억의 그늘에서 불쑥 솟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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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시란 어떻게도 어려운 것이랴. 이 말을 듣고 나면 차라리 붓을 들기가 무서워지기까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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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경험에서 이러한 사색으로 인생의 전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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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작품에는 술과 같은 성분(成分)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구나 술을 마시면 거나하게 취한다. 술은 그런 보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취하면 취중에는 거짓이 없다. 취중에는 진정만이 있다. 평상시에는 입안에까지도 끌어내지 못하던 진실이 대담하게 튀어나온다. 신랄한 비판이, 절실한 고민이 주위의 온갖 것에도 거리낌 없이 막 쏟아져 나온다. 그것이 그 사람의 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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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사람을 이렇게 진실하게 만드는 것은 곡류(穀類) 그것이 아니요, 곡류의 발효시킨 그 곡류의 작용인 것이다. 작품에 있어서 체험이라는 것도 술에 있어서의 곡류와 마찬가지로 작품 그것도 체험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체험 그것을 발효시켜야 되는 것이니, 체험을 발효시키는 기술, 그 기술이 작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술의 곡류의 발효로 누구나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만들 듯이 소설은 체험의 발효로 누구나 읽으면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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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우리는 위에서 말한 몇 가지의 예에서 작품이란, 체험을 기술로, 즉 사실로 진실로 발효시키는 ‘공상’ 여하에 따라 진실한 인생이 추구되고 추구되지 않는다는 것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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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글의 상대가 장차 작품을 쓰려고 하는 소설 지망자를 위한 글이므로 끝으로 한마디 덧붙여 말해 둘 것은 몇 천 년을 거쳐 흘러 내려온 문학의 역사에서 볼 때, 세계적인 명작이라는 것이 그 어느 것임을 막론하고 새로운 사상과 감정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이니, 이미 기성의 문학이 표현해 보지 못한 새로운 사상과 감정을 들고 나오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창작 지망자는 항상 생활의 체험에서 새로운 사상과 감정을 찾기에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새로운 감정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문학을 낳는 모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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