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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양산시 경상남도 양산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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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정보
◈ 양산시의 어제와 오늘
1. 내 고장의 어제와 오늘
 
 
 
양산시는 한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인구 18만의 전형적인 농업도시로서 서쪽에 경부선이 지나고 동쪽에는 국도 7호선과 중앙에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35호선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천성산을 진산으로 하고 천태산 대안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을 서쪽에서 껴안고 취서산에서 발원되는 양산천(梁山川) 물줄기를 젖줄로 삼아 천성산과 신불산 사이의 넓은 농토와 매기들의 320만평이란 광활한 평야에서 풍부한 쌀, 보리 등 1차산업이 발달되었으나 지금은 2차산업의 발달로 유산지방공단, 웅상지방공단, 산막·북정·소주 공업지로 21세기 정보산업의 전진 기지로 발돋움하고 있으니 국가기간산업기지로서 발전하고 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우리나라 불교포교지로서 그 명성이 있다. 불지종찰(佛之宗刹)인 통도사와 내원사, 신흥사, 미타암이 있고 특히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은 국보 제290호 문화재로 지정을 받고 있고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였다는 내원사(內院寺) 미타암(彌陀庵)과 역사적으로 심오한 신흥사(新興寺)가 있으며 고적으로는 양산부부총, 북정·중부·신기·백록·주남고분군과 신기지석묘, 다방패총 등의 유적들이 있고 특히 북정고분군에서 출토된 금조각(金鳥脚) 등은 국제적으로 매우 희귀한 고대 미술품들이다.
이렇게 발전된 양산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 눌지왕(訥祗王) 시대에 만고충신 박제상(萬古忠臣 朴堤上)이 이 고장의 고호인 삽량주간(良州干)이 됨으로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대과(大過)없는 설명이라고 하겠다.
양산은 원래 신라령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본기에 보면 시조 박혁거세왕(始祖朴赫居世王) 19년(BC 39) 변한의 한 나라가 신라로 항복하여 왔다는 기록을 보아 아마 이때부터 양산이 신라령으로 편입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신라는 여기를 기점으로 인접한 가야와 왜국과도 전쟁을 하였으며 신라 국가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석탈해(昔脫解)왕은 가야와 전쟁을 하였으며, 삽량주간인 박제상은 인질로 간 눌지왕의 두 동생의 구출을 위하여 고구려로 갔던 복호(卜好)를 데리고 왔으며, 왜국(倭國)에 잠입하여 왕제 미사흔(未斯欣)을 도환(逃還)시키고 자신은 그곳에서 붙잡혀서 왜지에서 소살(燒殺) 당하였기에 왜왕(倭王)은 그들을 가리켜 ‘과연 만고충신이로구나’라고 감탄하였다 한다. 그로부터 양산은 충열의 고장으로 일컬어 졌던 것이다.
또한 고려 충렬왕(高麗忠烈王)시대 왜구(倭寇)가 자주 칩입하여 백성을 괴롭히므로 방어사를 두어 이를 막았으나 충렬왕 말년에 왜구가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므로 방어사 김원현(金元鉉)은 이를 격파시켜 또다시 왜구가 침범하지 못하게 하므로써 교남(嶠南) 72주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기에 나라에서는 전승비를 세워 김장군의 전공을 포상하였던 것이다.
양산군수 조영규(趙英珪)는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왜군(倭軍)의 침략으로 동래성(東萊城)이 함락됨을 참을 수 없어 참전하여 부사 송상현(府使宋象賢)과 더불어 장렬히 전사하였기에 조정에서는 선무공신(宣撫功臣)으로 봉작하므로 군민들은 이를 기리기 위하여 춘추공원(春秋公園)에 삼조(三朝)의 충렬인 세 분의 비석(碑石)을 세우고 삼조의열단(三朝義烈壇)을 설립하여 춘추로 그 분들의 높은 충렬심을 숭앙하는 제향을 받들고 있다. 또한 대 백제전에서 그들의 예봉(銳鋒)을 꺾은 김서현(金舒玄) 삽량주도독공, 임진왜란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항복을 거부하고, ‘영위이씨귀 부작견양신(寧爲李氏鬼 不作犬羊臣)’이라 나염하며 불복한 송담 백수회(松潭 白受繪)선생이 지킨 절개와 일제 때 항일운동에 전 재산과 생명을 바친 윤현진(尹顯振) 선생, 형제 의병장으로 활약한 서병희(徐丙熙)선생 등과 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양산은 문자 그대로 충렬의 고장임을 자랑할 수 있다.
 
 
 
양산 시목
 
<양산시 연표>
시 대
연 대
주 요 사 항
 
고대
선사시대
다방패총, 신기지석묘(고인돌무덤), 독로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삼국
시대
22
석탈해왕 시대와 지마왕 시대 가야와 전투를 하였음
 
418
삽량주 뉼장시대이며, 관할은 낙동강 동편 전지역(양산, 울산, 기장, 동래, 부산)
 
757
양주(梁州) 경덕왕 16년에 개정, 1소경 12군34현 4정
 
고려
940
태조 23년에 양주(良州)로 개정
 
조선
1413
태종 13년 군으로 개칭하고 양산군으로 개명. 이전생과 그의 아들 이징석이 양산군(梁山君)으로 책봉되었음.
 
1592
백수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감(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많은 의병 활동을 함.)
 
근대
1918
윤현진, 상해임시정부 재정차장이 됨, 서병희 의병장으로 활약함
 
1919
3·1운동으로 양산시 폭력사건이 일어남
 
1930
양산농민조합사건 발생(일본동척회사를 공격하고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음)
 
현대
1945
해방과 더불어 민간출신 군수를 선출 (초대군수 지영진)
 
1973
동래가 양산에 병합됨
 
1995
양산군 동부 5개면이 부산시로 편입되어 기장군이 됨
 
1996
양산군을 양산시로 승격
 
 
 
 
 
 
 
 
2. 역사문화자원
 
역사적 사건과 현장
◈임진왜란의 의거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여 군수 조영규는 동래성을 구하고자 장졸들과 출동하고 동래부사와 더불어 전사하고 나니 고을은 텅 비어 있는 무주공산인데 동년 4월 17일 왜군이 칩입하자 양산배내에 사는 김영호(金永浩)는 아들 을생(乙生), 의상(義祥)과 합의하여 나라에 존망이 걸려 있는데 태수가 없다고 해서 방관할 수는 없다고 외치며 나라를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모여라 하고 방을 다니 당일로 수백 명의 장졸이 모여 칩입하는 왜군과 적수공권으로 싸워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낙동강에서 김해로 도해를 방해하였으며, 후방을 교란시키고 증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괴롭히면서 보급기지를 습격하기로 했다. 이때 의병으로 봉기한 의병장 안근(安謹), 이목란, 이수생 외 수많은 장졸들이 운집하였으며 특히 최흥국, 안시명, 안의명 등은 창녕 화왕산 전투에도 참가하여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 후일 그 공로가 인정되어 김영호 부자는 1, 2등의 선무원종공신이 되었으며, 안시명과 안의명 안근은 1, 3등에 녹훈되고 또한 다른 의병들도 다같이 공훈록에 등재되었다. 이 내용은 삼충록(三忠錄)내의 『남란일기(南亂日記)』와 『화왕산일기』에 기재되고 있고 공훈록은 『선조원종공신록』에도 있다.
 
◈양산의 3·1운동 의거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으로 된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이후 3월 26일 양산장날을 기해 엄주태, 전병건, 박삼도, 정주봉, 이귀수 등이 주동이 되어 양산시장에서 3,000여 군중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거하였다. 이로 인하여 주동자들은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며, 혹독한 고문과 옥고를 치루었고, 신평의거도 통도사 부속 보통학림과 지방학림 학생 김상문을 비롯한 수십명의 학림과 불교전수부 학생 10여명 및 승려 10여명의 주도 아래 신평 장터에서 군중들과 같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대 시위를 감행하였다. 특히 이때 불교전수부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을 역설하는 연설을 하여 군중을 감동과 흥분으로 몰아넣었고,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는 등 일제항거에 크게 노력하였으며, 녹림의 의사로서 순국충의를 나타낸 승병들의 전통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거였다.
 
내 고장의 역사적 인물
◈박제상 삽량주간 눌지왕 2년에 인질로 간 두 왕자를 구출하기 위하여 고구려에 가서는 왕제 복호(卜好)를 데리고 오고 일본에서는 왕제 미사흔(未斯欣)을 도환시킨 충신이다.
 
 
 
박제상을 모신 효충사 전경
◈김서현 장군 신라 진평왕시대 용장이며 삽량주 도독으로 대백제전에서 그들의 예봉(銳鋒)을 꺾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였다
 
◈김암 태수 경덕왕시대의 양산태수로서 왜왕에게 사신으로 가서 주술로서 굴복시키는 데 성공하고 왜왕을 감탄시키고 두렵게 하였다.
 
◈백수회 송담 백수회(松潭 白受繪)선생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양산군 동면 사배부락에서 수학 중 불과 19세의 나이로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갔다. 3개월 동안 유실에서 고생하면서도 항복을 거부하고 오히려 양어에게 죽어서 이씨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는 나염을 하며 절개를 지키니 왜인은 그 절개에 감탄하여 그를 석방하고 오히려 선생에게 충효정신의 교육을 받고 9년만에 본국으로 귀국하여 살다가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니 나라에서는 그 절개와 충성에 탄복하여 통정대부자여도찰방(通政大夫自如道察訪)을 제수하였다.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는 선생의 충렬(忠烈)을 추모하는 서원이 있으며, 매년 시민들이 추모제를 올린다.
 
◈고려 김맹 참지정사 현종초에 시관에 합격하여 평양도절도사로 갔다가 거란족을 격파하고 혁혁한 공을 세워 의춘현개국남의 봉작을 받고 참지정사로 승진하였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시호를 문정공(文定公)으로 받았다.
 
◈김원현 양주방어사로 삼차강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전승한 충신이다.
 
◈조영규 군수 양산군수 조영규는 동래성에서 출전하여 부사 송상현과 장렬히 순직한 충신이다.
 
◈이징석 장군 세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좌익공신(左翼功臣)이 되었다가 양산군(梁山君)으로 책봉을 받았으며, 시호는 장강공(莊剛公)이었다. 세조의 충신으로 그의 공적을 따를 분이 없다.
 
◈이징옥 장군 김종서 장군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 都節制使)가 된 이징옥 장군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분개하여 반기를 들었으나 여진족(女眞族)에 의해 대금황제가 되어 오국성(誤國城)으로 가다가 종성에서 피살당하였다. 세조(世祖)가 등극하여 그의 원적들의 혼을 위로하는 치제문에 공은 금세에 난신이요, 후세는 충신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윤현진 의사 3·1운동으로 중국에 가서 상해 임시정부 재정부차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사재를 투자하였으며, 전도가 유망하였으나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으니 해방 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내 고장의 문화유산
■국보
◈통도사대웅전 및 금강계단 제290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보물
◈국장생석표 제74호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781-1
 
◈신흥사대광전벽화 제1120호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268
 
◈통도사은입사동제향로 제334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국보 제290호)
◈통도사봉발탑 제471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용화사석조여래좌상 제491호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595
 
◈감지금의 대방광불 화앙경주본 제757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문수사리보살 최상승무생개경 제738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양산이씨 종손소장 고문서 제1001호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 427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제1041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통도사 대광명전삼신불상도 제1042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미타암아미타불여래상 제998호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171
 
◈묘법연화경 권 제3(통도사) 제1194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대불정여래밀인수 2권 1책 및 종료의제보살완행수능엄경 제9210호 제1195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묘법연화경 권제1-7호 제1196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사적
◈양산북정고분군 제93호 양산시 양산읍 북정리 698
 
◈양산신기 고분군 제94호 양산시 양산읍 신기리 산29
 
◈양산신기리산성 제97호 양산시 양산읍 신기리 산20
 
◈양산북부리산성 제98호 양산시 양산읍 북부리
 
◈양산시 중부동 고분군 제95호 양산시 중부동 산38
 
◈양산 법기리 도요지 제100호 양산시 동면 법기리 149-2
 
 
■쳔연기념물
◈양산 석계리 이팝나무 제186호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788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 제234호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
 
 
■도지정 유형문화재
◈양산향교 제205호 양산시 양산읍 교리 198
 
◈대원군척화비 제120호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667
 
 
■도지정 민속자료
◈가야진사 제7호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615
 
 
■도지정 무형문화재
◈가야진용신제 제19호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615
 
 
■도지정 기념물
◈가산분청도요지 제196호 양산시 동면 가산리 산64-1
 
◈화제녹청자도요지 제195호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1295
 
 
 
 
 
 
3. 생활문화자원
 
전통생활민속
양산시의 민속놀이는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들면 돌치기, 돌차기, 제기차기, 연날리기와 땅따먹기 등이 있는데 농경사회로부터 공업사회에서 최첨단 과학정보사회로 발달되면서부터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중 땅따먹기를 예를 들어보자.
 
◈땅따먹기 서너명의 아이들이 짝을 지어 땅따먹기를 하는데 땅바닥에 적당한 크기의 원 또는 네모를 그리고 각기 한모퉁이를 손뼘으로 반원을 그려 자기 집을 정하면 가위바위보로 선수자가 정해지면 이긴 쪽이 먼저 말을(조그마한 돌멩이) 자기 집에서 상대방 집에 넣으면 또 한뼘의 땅을 차지하는데 땅을 많이 차지하는 편이 이기는 것이 땅따먹기 놀이다. 생각하기로는 이 곳은 전쟁이 심한 곳이라 이러한 놀이가 유행된 것으로 믿어진다.
 
◈양산사찰학춤 양산사찰학춤은 기록에 의하면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가 열반 성불할 때 춘 춤인 것 같다. 학이 하늘을 날 듯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단이 한량들의 춤인 것 같으나 자장율사께서 문수보살을 만나지 못하고 열반한 지 얼마 후 문수보살의 인도에 따라 하늘로 승천 성불하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지금도 통도사의 연등행사 중에 하나로 이 춤을 재연하고 있다 하니 얼마나 자장율사의 성스러운 성불승천의 상징인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동래학춤 등으로 변형되고 있으나 동래학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많다고 본다. 이 춤은 참으로 신비롭고 황홀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춤이라 하겠다. 이 춤은 원형에 가깝도록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분이 있으니 경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김덕명(金德明)선생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고 있다.
 
구전설화
◈삼장수마을의 유래 조선의 개국공신 이전생(李全生)의 아들 삼형제가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장남은 징석(澄石), 차남은 징옥(澄玉), 삼남은 징규(澄珪)인데 힘이 장사였다. 하루는 그의 어머님이 아들의 힘을 시험해 보고자 아들 셋을 불러 생돼지고기를 먹고 싶구나 하니 효성이 지극한 그들은 그 길로 산에 가서 돼지몰이를 했는데 해질 무렵 큰아들은 황소 같은 죽은 돼지를 어깨에 메고 돌아오며 “어머님 이놈이 하도 말을 안 들어 죽여서 메고 왔습니다”라고 하고 삼남 징규는 중돼지 한 마리를 메고 들어 왔으나 차남 징옥은 소식이 없어 모든 식구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새벽녁에야 황소보다 더 큰 돼지 한 마리를 몰고 오니 하도 반가워서 어찌 늦었느냐고 물인 즉 “어머님이 생돼지가 먹고 싶다기에 저놈을 데리고 오려는데 저놈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때리기도 하고 업어주기도 하느라고 늦었습니다”라고 하니 어머님께서 과연 장사(壯士)로구나 하면서 감탄하였다 한다. 그날 가족은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도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장남 징석은 조정에 등용되어 파저강(婆猪江) 전투의 영웅이 되고 후일 좌익공신(左翼功臣)에 까지 올랐으나 차남 징옥은 김종서(金宗瑞)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 都節制使)가 되었다가 김종서가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피살을 당한 것을 알고 반기를 들고 대금황제(大金皇帝)로 추대되는 바람에 종성(鐘城)에서 암살 당하고 말았다.
삼남 징규는 중국에 진하사(進賀使)로 세조에 충성을 다하였다. 왕조실록은 이징옥란(李澄玉亂)이라 하나 역사 흐름과 더불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설화 같은 사실이다.
 
◈산막리의 유래 양산시 산막마을은 천성산 기슭에 자리잡은 산골마을이다. 이 마을 남쪽 산등을 넘으면 원효대사가 수도하고 있는 호계마을 뒷산의 반고굴(磻高窟)이 있다. 어느날 이곳을 찾아온 한 여인과 어린아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석공주(瑤石公主)요, 그의 아들 설총(薛聰)이다.
그들이 원효를 기다린지 오래였다. 하루는 원효가 육신통(六神通)의 하나인 천안통(天眼通)으로 보니 산너머 한 기슭에 움막을 치고 원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원효는 이것이 전생의 인연이로구나 하면서 석가모니(釋迦牟尼)와 그의 부인과 아들과의 인연을 회상하면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리를 통감하여 타심통(他心通)으로 돌려보내면서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하였다 한다. 요석공주가 막을 치고 기다리던 곳의 이름을 산막리라고 하여 오늘도 전해지고 있다.
 
◈용혈암(龍血岩)과 구룡신지의 유래 통도사 대웅전 옆에 구룡신지(九龍神池)가 있다. 용혈암은 절 입구 무풍교 뒷편에 붉고 큰 바위가 있다. 옛날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지으려고 하는데 절터 안에 큰 못이 있는데 그 못에는 아홉 마리의 독룡(毒龍)이 있었다. 스님은 조용히 이 용들을 떠나도록 주문(呪文)과 경(經)으로 설파하였으나 이 용들이 응하지 않으므로 스님은 도력(道力)으로 이 용들을 쫓아 내려고 하였으나 반항하므로 다시 법력을 발휘하니 용들이 겁을 먹고 도망을 치다가 세 마리는 달아나다가 이 바위에 부딪쳐 죽어서 그 피가 낭자하여 지금도 붉게 남아 있으니 후인들은 이 바위를 용혈암이라 부르고 있다. 나머지 다섯 마리는 신불산쪽으로 도망가다가 떨어져 죽으니 그곳을 오룡곡(五龍谷)이라 하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눈도 멀고 도망가지도 못하므로 스님께서는 이 절에 살면서 절을 보호할 것을 명하여 지금 대웅전 절에 조그마한 못을 만들어 살게 하였는데 지금도 그 못이 통도사 대웅전 옆에 있는 구룡지(九龍池)이다.
 
주민의 종교생활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곳곳에 있어 당산제, 산신제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나 지금 대개 사찰 또는 교회로 가서 소원을 빈다. 우리 고장의 종교적 시설로는 불교 사찰 110개소, 개신교 교회 81개소, 천주교 성당 4개소, 향교 1개소, 원불교 1개소가 있다
 
주민의 생활권역
양산지방이 지방공단으로 발전됨에 따라 생활의 권역이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유산, 북정, 산막, 소주공업지구의 양산지방공단지를 형성하는 웅상농공단지에 1,000여 기업체와 부가가치가 높은 금속류 화학류등이 생산되며, 종업원 60만여명과 그 가족들로 형성된 양산은 세계적인 유명업체인 미국의 날코코리아사와 일본의 J.S.T사가 어곡 지방에 입주함으로 신도시를 개발하여 풍부한 녹지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파트 중심의 생활환경으로 개선되고 있다. 신도시의 면적 320만평(10,182,000㎡)으로 인구 19만명을 더 수용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될 것이다. 현재 108개 단지와 400여개 동의 아파트에 만여 세대가 살고 있다.
 
지역의 별미음식
◈향토잉어회와 칼국수 양산의 황토 잉어회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지장수(地漿水)로 기르는 이 고기는 육질이 좋고 면역성이 강해 다른 담수에 비교할 수 없는 맛을 자랑한다. 그 내용은 황토신비의 저자인 류도옥(柳道鈺)씨의 책자에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으며, 지금 해양수산부에서 남해에 적조(赤潮) 피해를 막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양산시장(市場) 칼국수는 옛날 재래시장에서 번져 나온 것으로 그 맛은 서민들의 입에는 명동칼국수 맛도 여기에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웅상의 박국수와 박수제비 청결한 곳에서 재배되어 칼슘과 섬유질이 풍부하여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먹어야 할 무공해 식품이다. △발명자: 한경수, 양산시 웅상읍 용당리 118
 
◈선옥죽차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선호하는 차(茶)이다. 죽순 같은 다년생 식목으로 구증구포(九蒸九)의 제법을 따라 만드는 건강식품이다. 경상남도 장려품이며 특허품이다. 이 차의 맛은 하동화개 녹차맛이 따를 수 없는 신비하고도 묘한 향기를 가진 건강차이다. 양산시 웅상읍 용당리
 
◈오경신선란 이 농장에서 생산되는 계란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양계총수는 200만 수, 하루 생산량은 120만개의 방대한 수량이며, 상당한 기간 저장하여도 변하지 않는 특색이 있다 한다.
 
◈원동딸기와 수박 낙동강의 담수와 그곳에서 흘러 내려와서 모인 모래밭에서 재배되는 농산물로서 당도가 뛰어나고 풍토적으로 무공해 식품이다
 
◈원동매실 알카리성 체질개선에 효과가 있고 숙취제거에 뛰어나며 피로회복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4. 예술문화자원
 
지역문화예술행사
◈삽량문화제 [상세정보]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향토 문화예술의 전승·발전을 위하여 10월 5일 시민의 날을 전후하여 전 시민이 경축하며 시민으로서 긍지와 애향심을 고취시킬 향토문화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각계 각층의 고견을 모아 1986년 제1회 삽량문화제를 제정하여 10월 5일을 전후하여 공개행사 문학행사, 미술, 음악, 민속, 체육, 전시, 시민노래자랑 등 8개 부문에 걸쳐 14회를 실시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삽량은 1,500년 전 신라 눌지왕 2년(418)부터 경덕왕 16년(757) 340년간 불러온 양산시의 옛이름이며, 삽량문화제는 만고충신 박제상(朴堤上) 공의 충렬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로서 당시 삽량주는 지금의 경주 월성을 포함, 경남 중동부 지역을 관장하였으며, 삽량의 뜻은 지극한 충성의 뜻을 갖고 있다. ① 행사종목은 삽량주간 박제상 가장 행렬 ② 삼장수 가장행렬 ③ 가야진용신제놀이 가장행렬 ④ 웅상 농청놀이 가장행렬 외 50여종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음.
 
◈가야진용신제놀이 [상세정보] 이 놀이는 『삼국사기』 제사조에 보면 제2대 남해왕이 시조왕묘에 제사를 지냄으로 시작된 것인데 농경사회라서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천지신명에게 바치는 고제(告祭)이다.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가 있는데 여기는 중사 중에 사독(四瀆)제이다. 원래 동쪽에는 토지하(土志河), 남쪽에는 황산하(黃山河) 일명 낙동강이라고 하며 서쪽은 웅천(熊川), 북쪽에는 한산하(漢山河)인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낙동강에 가야진사에 지내는 가야진용신제만 남았다. 이 놀이를 보면 부정을 물리치기, 칙사맞이, 길딱기놀이, 칙사영접, 굿놀이, 돼지를 용왕님께 바치는 침하돈(沈下豚)놀이로 구분하여 행하는데 그 기에는 네 개의 깃발이 선창과 상쇄, 대북, 소북, 잡색 등으로 구성하여 한마당 잔치를 벌이는 놀이이다. 오직 양산만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보존되고 있다.
 
 
 
가야진용신제 놀이 중 척사맞이
◈웅상농청놀이 이 놀이는 웅상망시곱매기 놀이를 발전시켜 웅상 농청놀이가 되었다. 곡창인 이곳에서는 일년 열두달 농사를 중심으로 희노애락이 어우러져 웃고 울면서 일하고 있는데 아무리 고달파도 그것을 모르는 놀이행사이다. 우리나라 세시풍속에서도 보다시피 정월 입춘이 시작되면 작년에 파종한 보리싹 밟기, 벼논깔기, 씨벼싹틔우기, 묘 이식과 더불어 보리타작 논매기에 초불두불 망시매기에 농사장원을 뽑고 풍년을 축하하는 농사놀이인데 추수가 끝나면 설날을 맞아 노는 일이며 이것을 조직적으로 연출하는 것이 웅상농청놀이다. 경남민속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 전국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웅상농청놀이 중 망시곱매기
지역문화예술단체
◈양산문화원 양산시 북부동 327-1 ☎ (055)386-0890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양산시지부 양산시 북부동 327-1 ☎ (055)372-4567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양산시 북부동 327-1 ☎ (055)382-5755
 
◈한국사진작가협회 양산시지부 양산시 북부동 327-2 ☎ (055)382-6052
 
◈한국미술협회 양산시지부 양산시 북부동 327-2 ☎ (055)388-2177
 
◈한국무용협회 양산시지부 양산시 북부동 327-2 ☎ (055)386-4600
 
◈한송예술협회 양산시하북면 순지리 681-5 ☎ (055)382-0654
 
◈양산서도회 양산시 북부동 327-2
 
◈가야진용신제놀이보존회 양산시 북부동 327-2
 
◈한국민주예술인협회양산지부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 (055)385-6031
 
지역문화예술 시상제도
◈양산시 시민대상 ① 문화부분 ② 봉사부분 ③ 산업부분 ④ 체육부분 ⑤ 효행부분. 양산시 조례에 의하여 매년 10월 5일을 시민의 날로 제정하여 각 부분에 지역사회 발전과 문화창달에 기여하고 효행이 지극할 뿐 아니라 향토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일맥문화대상 이 상은 일맥 황내성(一麥 黃來性)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선생은 경남창원 출생으로 양산에서 태창기업 동부산컨트리클럽을 경영하시다가 작고하신 분으로서 양산, 부산, 울산지역에 거주하는 학술문화예술과 교육에 큰 업적을 남기신 분들에게 고인의 기일날 시상하는 상이다.
 
지역출신 예술인
◈엄정행 현 경희대학교 교수 성악가. 양산시 중부동 출신으로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테너로서 전국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우리 고장 출신의 성악가이다.
 
◈이원수 시인 양산시 북정동 출신으로 이곳에 소학교를 다니다가 창원으로 가서 고향이 그리워 지은 노래가 「고향의 봄」이다. 실향으로 어린시절 옛 고향이 그리워 지은 노래인데 당시 『문학 소년』 잡지에 게재됨으로서 문단에 인정되었으며 「오빠생각」, 「뜸부기」 등 많은 노래를 지어 아동문학가로서 고향을 빛냈다. 말기에는 한국아동문학가협회를 창설하여 스스로 회장이 되어 어린이를 위한 많은 주옥같은 시와 소설을 남겼으며, 그 중에서도 「고향의 봄」은 전 국민의 애창곡이다.
 
 
 
이원수 노래비
◈무용가 김덕명 김덕명 선생은 선천적으로 고전무용을 위해 태어난 사람같다. 인생의 전부를 춤에 매달린 선생은 춤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춤의 율동은 마치 신선이 공중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어린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가 추는 춤은 약 27개 종류로 사찰학춤, 한량무, 교방타령무, 신라장건무, 교방진연무, 태극무, 바라춤 등 선생이 구사할 수 있는 20여종의 춤가락은 사람을 무아지경에 끌고 가는 듯하며 특히 사찰학춤의 24개 춤사위가 자유자재로 돌아가는가 하면 학이 하늘에 올라가는 시늉은 그가 사람이 아니고 학인 것 같다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인 한량무(閑良舞) 기능보유자이기도 한 선생은 양산사찰 학춤을 국가적으로 공인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선생은 금년 77세로 인생의 황혼임에도 그의 춤사위는 젊은이들이 혀를 찰 정도이다. 김옹은 일본 중국 우리나라 무대에서 춤을 구사, 옹에게 그 젊음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은 고향에서 후배양성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으며 옹은 양산시 동면 내송리 출생이다.
 
 
 
 
 
 
5. 관광, 여가문화자원
 
관광자원
◈통도사 우리나라 굴지의 명찰로서 불지종찰이란 면목을 갖추고 있다. 양산시 하북면 지산과 순지, 초산 일대가 사찰 경내이며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선덕왕 15년(646)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이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여 지금의 웅대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왔다. 「대웅전 금강계단」은 국보로 지정되었고 대웅전에 불상이 없고 금강계단에 부처님의 진시사리가 봉안되어 있음으로 더욱 유명하다.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에 있는 「국장생 석표(國長生石標)」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려 선종(高麗宣宗) 2년에 건립된 것이다. 장생표가 서있는 사방 전답과 산천은 사찰의 소유라고 하니 현재 남아 알려진 것만 해도 울주군 상남면 상천리와 밀양시 무안면에 있는 것과의 거리를 추정한다면 통도사 소유의 전답 산천이 엄청난 것으로 짐작된다. 본사(本寺)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영산전·약사전 등 많은 전루상(殿樓像)과 창건주 자장율사의 진영과 지공(指空) 뇌옹(瀨翁)과 무학(無學)대사의 진영들이 있으니 더욱 숭앙에 상징이 된다. 사찰 입구의 불이문은 통도사 팔경(通度寺八景)으로 더욱 유명하다. 지금부터 1350년 전에 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는 신라 진골이며 국왕의 자리를 버리고 불자의 길을 택한 스님이시며 우리나라의 명망 높은 대사 중에 한 분이었다. 경부고속도로로부터 통도사 IC에서 가면 되고 35호 국도선을 따라 신평정유소에 하차하면 사찰로 가는 길이 된다
 
 
 
통도사 전경
◈내원사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에 있는 이 사찰은 원효대사와 깊은 인연을 가진 사찰이다. 대사께서 천명대중을 데리고 이리로 와서 천성산 정상에 수도장을 만들고 이곳에 원사를 세우니 바로 내원사(內院寺)이다. 인접한 안적암과 노전암은 성사(聖師) 낭지법사와 의상대사와 같이 왕래하면서 불도를 연마하였다 한다. 이 내원사를 감싸고 있는 산천이 너무도 수려하여 소금산이라 하며 내원사 입구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의 물소리는 과연 웅장하며 산천의 경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할 길이 없게 한다. 부산에서 언양으로 가는 35호 국도선 버스를 타고 양산을 경유하며 내원사 입구에서 하차해 약 2㎞ 걸어가면 된다.
 
 
 
내원사 계곡
◈신흥사 대광전 신흥사는 아득한 옛날 이곳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대광전의 탱화는 오묘한 고대불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나 대체로 학자들의 견해는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기에 보물 제1120호로 지정된 것이다. 양산시 원동면 영포리
 
◈미타암 이 절에는 아미타여래입상(阿彌陀如來立像)이 보물 제98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석굴사 원안에 좌상한 아미타여래상은 부처님의 전신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 『삼국유사』에 다섯 비구승이 삽량주 동쪽에 절을 지어서 살았다고 하는데 절은 천성산 동쪽에 있으며 그곳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절경은 과히 일품이다.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71번지. 부산에서 국도7호선을 타고 웅상에서 하차하여 서쪽에 있는 천성산으로 가면 된다.
 
◈국장생 석표 보물 제74호.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781-1번지에 있으며 고려 선종 2년(1085)에 나라에서 통도사 경계를 표시해준 석표인 듯 하다 이와 같은 비석은 통도사 주위의 목석(木石)표와 합해서 12주가 있다 한다. 이 장생표에는 인근에 민간인이 어떤 전답산천도 소유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국장생 석표
관광시설
◈원동 자연휴양림 아름다운 자연 속에 위치한 휴양림은 수련장, 체력단련장과 야영장, 삼림욕장, 산막 등을 갖추어 도시민들의 편안한 안식처로 제공하고 있으며 조금 더 배내쪽으로 가면 밀양(密陽)댐이 있다. 앞으로 양산과 밀양사람들에게 1급수의 물을 공급할 것이다. 주변의 관광지로서 배내골 신흥사 명사관광농원이 있으며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산77번지에 있고 경부선 열차를 타고 원동역에서 하차하여 약 4㎞ 지점에 있다
 
◈통도환타지아 통도환타지아는 통도사 입구 우측에 자리잡은 6만여 평 규모의 놀이시설로서 다양한 유희장과 야외공연장, 전시관 등을 갖춘 현대적 유원지로서 청소년 및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진취적인 시설이다. 이곳은 시민들의 여가선용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관광시설로서 체육을 생활화하는 영남지역에서 최대의 놀이시설이다. 22개의 유희시설인 대형 위락단지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위치 -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470번지 경부고속도로 통도IC에서 하차하여 통도사 입구에서 우회전하고 국도35호선 신평정유소에서 하차 10분 간격의 거리다.
 
◈다람쥐캠프장 양산시 명곡동 산10번지 어린이 놀이시설이며, 남북이 산이며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더불어 산새소리 들으며 즐길 수 있는 야영장이며, 숙박시설도 있다. 넓이는 약 400여평이고 수용인원은 약 700명 정도이다.
 
◈청소년수련관 웅상청소년수련관은 총연면적 4,598평으로서 연인원 3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대한 시설이며, 216명이 일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있고 시민의 여가선용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웅상읍 평산리 무지개청소년수련장도 앞과 같은 시설이며, 면적은 비교적 넓은 자연수련장이다. 원동 유스호스텔 하북환타지아, 수련장도 마찬가지로 양산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그를 벗삼아 휴식할 수 있는 현대인의 안식처이다.
 
여가시설
◈통도컨트리클럽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일명 통도컨트리클럽(한일리조트)은 36홀이며, 통도사 IC에서 하차하여 남동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고,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신라시대 토성지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그 유적이 보존되고 있다.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233
 
◈동부산컨트리클럽 27홀로서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산131번지에 있다. 부산과 인접하여 부산서 울산 가는 국도 7호선을 따라 덕계리에서 하차하면 된다.
 
◈양산아도니스골프장 27홀로서 한교관광개발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덕계리에서 하차하면 된다.
 
관광숙박시설
◈통도관광호텔 지하1층 지상5층 객실57실의 한실과 양실을 합한 것으로 부대시설로서는 황토방, 단란주점, 일반음식점, 커피숍, 연회장이 있다. 경부고속도 통도사 IC에서 찾을 수 있다. 하북면 초산리 322-13번지 1급
 
◈통도사알프스관광호텔 객실 59실 한실과 양실을 합한 것이며, 나이트클럽, 목욕탕, 연회장이 있다. 경부고속도로 통도IC에서 하차, 북쪽으로 500m 거리에 위치함.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관광안내
◈양산시청 문화공보실 각 읍면동사무소
 
◈삼성고속관광(주) 양산시 북부동 386-8 ☎ (055)385-6700
 
◈양산고속관광(주) 양산시 중부동 311 ☎ (055) 388-6300
 
◈뉴대전여행사(주) 양산시 북부동 148-19 ☎ (055)384-0300
 
◈한솔고속관광(주) 양산시 북부동 688-8 ☎ (055)372-3333
 
관광코스
◈취서산 등산 부산 → 통도사 → 서쪽 1㎞ (경부고속도로 부산-대구간 천일고속버스를 이용 통도사 IC에서 하차)
 
◈천성산 등산 부산 → 대성하차 도보로 정상까지 4㎞, 부산 → 웅상 하차 도보로 정상까지 4㎞
 
◈천성산 등산 북정고분군 → 호계마애불 → 홍룡폭포 → 원효암 정상 → 원적산 봉수대 → 석계서 35호 국도에서 버스 이용
 
◈원동배내골 유원지 경부선 원동역 하차 신흥사 → 내포 → 파래스폭포 → 물금석조여래좌상 → 양산향교 → 춘추공원
◈웅상무지개폭포 → 미타암 → 탑골 → 천불사
 
 
 
 
 
 
6. 문화시설자원
 
문화회관
◈양산문화회관 양산시청사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지 5,000평에 연건평 2,036평(지하 1층, 지상 3층)에 대공연장, 소공연장, 전시실, 야외공연장, 문화예술단체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음(2002년 준공예정).
 
박물관
◈성보박물관 통도사 경내에 있으며 불교문화유산이 전시되고 있으며 많은 유물이 있다.
 
도서관
◈양산도서관 양산도서관은 양산고등학교 입구에 있다. 장서 60권. 강좌시설 1개소 연건평 300평,
 
◈웅상도서관 양산시 웅상읍에 있으며 장서 50만권, 강좌교실 1개소 등이 있다.
 
문화원
◈양산문화원 △설립1986년 10월에 창설 △위치 : 양산시 북부동 327-2번지 △규모 : 총평수 210평 △회원 : 약350명 △부지 : 140평 △ ☎ (055)386-8890 △Fax 055)386-0890 △초대원장 : 김두성 △2대원장 : 김두성 △3대원장 : 김우헌 △현재 임원구성 : 원장/이종관, 부원장/정진성, 김영돈, 감사/박정수, 박철구, 이사/권명, 김용규, 김용쾌, 김정진, 김정경, 김진규, 유득원, 박개웅, 박용이, 안윤한, 정규화, 정금모, 정임성, 정진옥, 조문관, 최시철, 하덕성, 사무국장/김진명 △문화원 부설기구 : 양산문화학교, 양산향토사 연구소, 문화원합창단, 양산고전무용소
경상남도 양산시 정보
• 양산시의 어제와 오늘
• 양산시의 역사문화자원
(2005.06.0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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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