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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구리시 경기도 구리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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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목치)
경기도 구리시 정보
◈ 구리시의 생활문화자원
◈ 전통생활민속 - 갈매동 도당굿, 벌말다리밟기 / ◈ 구전설화 - 망우리와 왕숙천 지명의 일화, 장자못 / ◈ 구리시의 옛사찰 - 범굴사지(梵窟寺址), 3층석탑 / ◈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 먹골배
목   차
[숨기기]
 

1. 생활문화자원

 
 

1.1. 전통생활민속

◈ 갈매동 도당굿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구리시 갈매동 산치성 도당굿은 500여년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 마을굿이다. 무속신앙인 도당굿이 사라져가는 이때 갈매동 도당굿(산치성)은 2년마다 거행함으로써 원형 그대로의 보존된 지역사회의 축제이자 놀이문화로서 마을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음력 2월 초하루날에 삼화주를 뽑는 회의를 하고 부정풀이를 하여 사전에 잡기를 미리 예방한다. 이때부터 제의를 준비하고 음력 3월 초하룻날이 오면 당주, 숙주, 도가, 화주, 시주 등 5명이 생기복덕을 보아 제일을 정한다.
 
그리고 곧바로 당집에 가서 대들보에 첩을 붙여 날이 잡혔음을 도당에게 아뢴다. 다음날인 음력 3월 초이튿날 밤에 산치성을 올리고 그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유가를 돌며 초사흘날에는 본굿이 이루어진다.
 
현재 기·예능 보유자로 무녀 조순자와 잡이 허용업이 있다.
 
◈ 벌말다리밟기
구리시의 민속놀이로서 대표적인 것에 토평동의 벌말다리밟기가 있다. 벌말다리밟기는 이곳 구리시 토평동이 지형학상 항시 여름이면 범람하여 홍수재해를 입는 곳이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전승되어 온 민속놀이다.
 
이 놀이는 구리시 토평동의 벌말과 돌섬을 잇는 목교(木橋)에서 정월대보름을 전후해서 놀았던 민속놀이로 일제시대에는 남사당패를 불러다 놀았다고 한다. 벌말다리밟기는 길놀음, 다리밟기, 마당놀이, 민요 , 뒷풀이 등 다섯마당으로 되어있다.
 
 

1.2. 구전설화

◈ 망우리와 왕숙천 지명의 일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1408년 사망하자 그의 유택인 건원릉이 양주땅 ‘검암’(지금의 동구릉 터)에 조성되었다. 이후 조선조 500년간 이곳 아홉 개의 능역에 17위의 왕과 왕비의 능이 들어서면서 동구릉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능침지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망우리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자신이 묻힐 유택(幽宅)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 지금의 동구릉 묘역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넘어 환궁하다가 이제는 근심을 잊었다 하여 잊을 망(忘) 근심 우(憂) 망우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생겼고 그 근방 냇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고 하여 그 내가 왕숙천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망우리 고개는 산 일대가 풍수지리상 명당터로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묘지가 되었으며 지금 그곳에는 아동문학가 방정환, 시인 한용운, 역사학자 문일평, 독립운동가 오세창, 그리고 조봉암 등 유명인사들의 묘소가 있다.
 
◈ 장자못
구리시 토평동 벌판에 있는 25만여평의 장자못에 얽힌 사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는 설화 내용 중의 하나다. 내용은 옛날 장자(부자)집에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에게 장자가 쌀 대신 똥을 퍼주었는데 이를 본 며느리가 몰래 쌀을 시주하였다. 스님은 며느리를 기특히 여겨 난을 피할수 있는 방도를 알려 주었는데 그것이 뒤를 보지 말고 따라오라는 금기(taboo)의 제시였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아 금기를 어긴 며느리는 돌이 되었고 장자집은 천벌을 받아 못이 되었는데 그것이 장자못이라는 설화다. 지금의 교문동 우미내 43호선 국도변에 서있는 ‘반신여인석상’이 바로 전설속의 며느리 석상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34년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도 이 전설을 소재로 했고 고대소설 『옹고집전』도 전반부는 장자못 전설로 윤색되었으며 한말숙의 소설 『돌』도 바로 장자못을 소재로 한 소설이었다. 장자못의 전설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금기(taboo)설화이다.
 
 

1.3. 구리시의 옛사찰

◈ 범굴사지(梵窟寺址)
아천동 산 57에 있는 범굴사지에는 지금 대성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본래는 범굴사였다고 한다.
 
범굴사는 신라 진덕여왕(647)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개창하였다고 하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폐사, 화재 등의 화를 당하였다고 한다. 그후 1936년 중성전을, 1942년 극락전을 재건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대성암에는 삼성각 뒤편의 암벽에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 3층석탑
구리시 아천동에 3층석탑이 있는데 이는 구리문화원이 구리시와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모습을 알 수 없이 흩어져 산재해 있던 탑신을 모아 복원하였는데 규모가 작고 아담하여 경쾌한 맛을 풍기는 것으로 보아 백제 양식의 고려시대 3층석탑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1.4. 지역의 토산품과 특산품

◈ 먹골배
양질의 마사토양과 한강의 찬바람 등 천혜의 기후조건으로 설탕을 뿌려 재배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맛이 좋아 옛부터 먹골배는 궁중진상품으로 꼽혀왔다. 조선시대 과거에 낙방한 선비들이 모여 생계수단으로 먹과 붓을 팔면서 배를 재배하였는데 이곳을 묵동으로 칭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배를 먹골배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근래에 서울 묵동우ㅏ 도시개발로 배밭이 없어지고 그 산지가 구리시로 옮겨왔기에 먹골배는 구리시의 토산명물이 되었다. 갈매동, 동구동, 교문동 일대가 주산지다.
경기도 구리시 정보
• 구리시의 역사문화자원
• 구리시의 생활문화자원
• 구리시의 예술문화자원
(2005.06.1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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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