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남양주 수동면 송천리에 장자터가 있었다. 어떤 부자가 큰 길 옆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면 부자의 집에 들러 자주 잠자리를 청하였다.“잠 좀 재워 주시오.”“밥 좀 주시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여 부자는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달성 서씨 집안에서 산소를 쓰려 하였다. 그 때 풍수지리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무쇠를 쓰고 총을 들고 노루를 쫓거든’ 산소를 쓰라고 했다. 그 후, 비가 내리는 날에 어떤 사람이 총을 쏘면서 노루를 쫓고 있었고, 아주머니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무쇠로 만든 솥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 어느 마을에 한 머슴이 있었는데, 갯가에 나갔다가 처녀가 물에 빠져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시체를 간(姦)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지게에다 시체를 짊어지고 산으로 가서 잘 묻어주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에 한 형제가 살았는데, 큰집은 형이 지관 일을 해서 잘 살고, 동생네집은 못살았다. 어느날 동생의 마누라가“여보, 큰댁은 잘 사는데 우리는 못사니 어떡하면 좋우.”“큰댁은 형님이 산소 자리를 보니까 잘 살지만, 나야 뭐 산소자릴 볼 줄 알아야지?” 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 어느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그들은 너무 가난하였기 때문에 남의 논에 있는 피를 가져다가 먹고살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 부인은 남편에게 “배고픈 것이 가장 큰 설움이니 아이들과 배불리 실컷 먹고 죽더라도 오늘 저녁은 벼를 훔쳐다가 밥을 해 먹어요.” 라고 말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지관에게 묘자리를 물었다. 그런데, 어느 집안이 지관에게 묻지 않고 아무 곳에나 묘를 쓰려고 하니 그 마을의 유명한 지관이 하는 말이“그 곳에 묘를 쓰면 삼태생이는 낳아도 아들 셋은 다 호환을 당합니다.” 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 어떤 중이 원님을 찾아가 하룻밤을 같이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 중이 한밤중에 슬그머니 일어나 바랑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하도 이상해서 원님이 따라가 보니, 중은 산으로 올라가 어느 한 곳을 팠다. 그러고는 바랑 속에서 해골 하나를 꺼내어 그 곳에다 묻었다. 이것을 보고 먼저 돌아온 원님이 자는 척하고 있으니, 중도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누워 잤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구룡폭포에 묘가 있었다. 어느 지관이 일렀다.“산소자리를 구 척 파라. 그러면 툭 불거진 데가 나올 것이다. 그 위에 관을 그냥 모셔라. 또한 하관 시에는 독력골서 새벽 세시에 노루가 세 번 울 때 하관을 하라.” 지관의 말 대로 사람들이 산소자리를 파보니 거기에 큰 돌이 두 개 있었다. 상꾼들이 산소 자리를 평평하게 하기 위해서 그 돌을 깨자, 돌에서 피가 주르륵 나오고 그 자리에서 매 한 마리가 나와 날아갔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누구에게나 쥐통이라는 통증이 올 수 있는데 이 동네에 들어서면 쥐통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그 이유인즉 이러하다. 이 동네의 형세를 일러 사제형국이라 하는데 촛대봉 쪽은 뱀의 형국이요, 그 건너는 부엉이가 내려다보는 형국이요, 괭이산 쪽은 괭이 같은 형국이다. 그 안에서 서로 쥐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산골 어느 마을에 가난한 모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들은 효성이 지극했다. 하루는 아들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중이 상제와 함께 걸어가다가 한 장소를 가리키며 말하기를,“저 곳에 집이나 산소를 쓰면 금새 발복할 것입니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남양주 수동면 송천리에 장자터가 있었다. 어떤 부자가 큰 길 옆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길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면 부자의 집에 들러 자주 잠자리를 청하였다.“잠 좀 재워 주시오.”“밥 좀 주시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여 부자는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사람이 죽으면 지관을 불러 묘를 썼다. 어느 집안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손자들이 모여 지관을 불렀다. 지관이 손자들에게 말했다.“석 자를 못 파서 바위가 깔렸을 게야. 그러면 돌을 떼지 말고 거기다 시신을 모시게.” 하지만 손자들은 지관의 말을 무시하고는 바닥에 있던 돌을 들쳐 내었다. 그러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파란 연기가 감돌며 학이 나왔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송씨네 산에 ‘파명당’이라는 명당이 있었다. 옛날에 송씨네 부모가 죽어 산소를 쓰려할 때 도사가 산세를 잡아 주었다. 도사가 땅을 아주 조금만 판 후에, “널만 묻을 정도로 덮어라.” 고 했다. 그러자 송씨네 사람들이 너무 놀라 “아버지, 어머니를 어떻게 땅 위에다 모십니까?”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구룡폭포에 묘가 있었다. 어느 지관이 일렀다.“산소자리를 구 척 파라. 그러면 툭 불거진 데가 나올 것이다. 그 위에 관을 그냥 모셔라. 또한 하관 시에는 독력골서 새벽 세시에 노루가 세 번 울 때 하관을 하라.” 지관의 말 대로 사람들이 산소자리를 파보니 거기에 큰 돌이 두 개 있었다. 상꾼들이 산소 자리를 평평하게 하기 위해서 그 돌을 깨자, 돌에서 피가 주르륵 나오고 그 자리에서 매 한 마리가 나와 날아갔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 어떤 중이 원님을 찾아가 하룻밤을 같이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 중이 한밤중에 슬그머니 일어나 바랑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하도 이상해서 원님이 따라가 보니, 중은 산으로 올라가 어느 한 곳을 팠다. 그러고는 바랑 속에서 해골 하나를 꺼내어 그 곳에다 묻었다. 이것을 보고 먼저 돌아온 원님이 자는 척하고 있으니, 중도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누워 잤다.【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지관에게 묘자리를 물었다. 그런데, 어느 집안이 지관에게 묻지 않고 아무 곳에나 묘를 쓰려고 하니 그 마을의 유명한 지관이 하는 말이“그 곳에 묘를 쓰면 삼태생이는 낳아도 아들 셋은 다 호환을 당합니다.” 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 어느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그들은 너무 가난하였기 때문에 남의 논에 있는 피를 가져다가 먹고살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 부인은 남편에게 “배고픈 것이 가장 큰 설움이니 아이들과 배불리 실컷 먹고 죽더라도 오늘 저녁은 벼를 훔쳐다가 밥을 해 먹어요.” 라고 말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에 한 형제가 살았는데, 큰집은 형이 지관 일을 해서 잘 살고, 동생네집은 못살았다. 어느날 동생의 마누라가“여보, 큰댁은 잘 사는데 우리는 못사니 어떡하면 좋우.”“큰댁은 형님이 산소 자리를 보니까 잘 살지만, 나야 뭐 산소자릴 볼 줄 알아야지?” 라고 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옛날 어느 마을에 한 머슴이 있었는데, 갯가에 나갔다가 처녀가 물에 빠져 죽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시체를 간(姦)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아무리 죽은 사람이지만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지게에다 시체를 짊어지고 산으로 가서 잘 묻어주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
【문화】달성 서씨 집안에서 산소를 쓰려 하였다. 그 때 풍수지리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무쇠를 쓰고 총을 들고 노루를 쫓거든’ 산소를 쓰라고 했다. 그 후, 비가 내리는 날에 어떤 사람이 총을 쏘면서 노루를 쫓고 있었고, 아주머니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무쇠로 만든 솥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인용】포천의 설화(포천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