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한라산 내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이다.
기관/단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동 한라산 내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3교구 본사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30여 개 말사를 관장한다.
역사
창건자 및 창건 연대는 미상이지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의 12개 사찰 중 마지막에 기록되었다. 제주의 민담, 설화, 전설 등에 등장하는 괴남절, 개남절, 동괴남절, 은중절 등의 이름을 예로 들어 멀리는 탐라국 시대에 이미 해로를 통해 남방불교가 들어와 관음사가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렇듯 제주도의 고찰로 명맥을 이어오던 관음사는 제주에 잡신이 많다 하여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많은 사당과 함께 사찰 500동을 폐사하였을 때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관음사는 비구니 안봉려관(安逢麗觀)이 승려 영봉(靈峰)과 도월거사(道月居士)의 도움으로 1912년에 창건한 것이다.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쳐 시련을 겪었으나 안봉려관 스님은 3년 토굴에 은거하며 사찰 재건에 힘을 쏟았다. 처음에는 법정암(法井庵: 관음사의 전신)이라 하였으며 창건 당시 불상과 탱화는 용화사(龍華寺)와 광산사(匡山寺)에서 옮겨 왔다.
모처럼 재건된 관음사는 1939년 화재에 이어 제주 현대사의 아픈 상처인 제주 4.3 사건의 광풍을 마주했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탓에 유격대와 군 토벌대의 치열한 격전지로 전락한 관음사는 국군의 손으로 완전히 불태워지고 군주둔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토벌대 때문에 모두 소실된 관음사는 1968년에 복원되었다.
건물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명부전, 종루, 산신각, 불이문(不二門), 일주문 등이 들어서 있다. 본사의 기능과 함께 제주시내에 포교당을 갖고 있으며 제주불교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계획이 준비되고 있다.
【문화】강계읍(江界邑)에서 여장(旅裝)을 챙겨 평안도(平安道) 북단(北端)에 있는 후창(厚昌)으로 가려고 하여 지도를 편다. 자동차길이 후창(厚昌)까지 뚫려 있다. 본래 후창(厚昌)땅은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의 옛 땅이었으나, 너무도 궁벽한 땅이라서 내버려 두었더니, 여진족(女眞族)이 여기에 웅거하여 노략질을 자행하므로 이조(李朝) 때에 와서는 태조(太祖)가 다시 수복시켜 갑산부(甲山府)에 예속시켰었다.
【문화】가을이 깊어감에 대하여 곱게 불타던 단풍잎이 칙칙하게 퇴색해가는 먼 산을 바라보며, 아침 일찍 개천(价川)역에 내렸다. 동쪽에 백탑산(白塔山, 1,160m), 월봉산(月峰山, 1,033m)이 아침 안개에 싸여있고, 구름 사이로 내리쪼이는 따스한 햇살이 유난히도 맑다.
【문화】강계읍(江界邑)에서 여장(旅裝)을 챙겨 평안도(平安道) 북단(北端)에 있는 후창(厚昌)으로 가려고 하여 지도를 편다. 자동차길이 후창(厚昌)까지 뚫려 있다. 본래 후창(厚昌)땅은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海)의 옛 땅이었으나, 너무도 궁벽한 땅이라서 내버려 두었더니, 여진족(女眞族)이 여기에 웅거하여 노략질을 자행하므로 이조(李朝) 때에 와서는 태조(太祖)가 다시 수복시켜 갑산부(甲山府)에 예속시켰었다.
【문화】가을이 깊어감에 대하여 곱게 불타던 단풍잎이 칙칙하게 퇴색해가는 먼 산을 바라보며, 아침 일찍 개천(价川)역에 내렸다. 동쪽에 백탑산(白塔山, 1,160m), 월봉산(月峰山, 1,033m)이 아침 안개에 싸여있고, 구름 사이로 내리쪼이는 따스한 햇살이 유난히도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