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7 ~ 1592]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유칙(維則), 호는 매와(梅窩).
선조(宣祖) 때 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에 천거되어 남포(藍浦)와 당진 현감(唐津縣監)을 지낸 명장(名將)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휘하에 2백 명을 거느리고 영남(嶺南) 일대에서 전공을 세워 무명(武名)을 떨치고, 절도사(節度使)
황진(黃進) 장군과 합류하여 진주성(晋州成)을 지키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비장한 각오를 하고는 조카 덕린(德麟:지의 아들)과 덕이(염의 아들)를 시켜 "내 몫까지 부모님 잘 모셔주시옵고 나의 뼈를 촉석루 아래에 거두어 주십시오" 라는 편지를 형님에게 부친 다음 왜적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왜적들도 이 제(悌)의 충절에 감탄하여 “참다운 의사(義士)”라 하며 그의 시신을 거두어 진주성(晋州城) 남쪽에 가매장하고 “조선의사 송제의 무덤(朝鮮義士宋悌之屍)” 이란 표찰을 세워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