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 ~ 2015] 철학박사로, 호는 향운(香雲)이다. 1922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943년 월정사에서 지암 이종욱 스님의 도제로 득도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도쿄대학 대학원을 거쳐 오타니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1987년에 정년퇴직하였다.
인물 :
[1922 ~ 2015] 철학박사로, 호는 향운(香雲)이다. 1922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943년 월정사에서 지암 이종욱 스님의 도제로 득도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도쿄대학 대학원을 거쳐 오타니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1987년에 정년퇴직하였으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동방 불교대학 학장, 한국요가학회ᆞ한국정토학회 회장, 한국요가-아유르베다학회 회장, 한국요가문화협회 구루,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노인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7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인도철학》《인도종교 철학사》《밀교의 세계》《금강대승밀교총설》《붓다의 호흡과 명상》《명상의 세계》《극락세계 가고 싶어라》《불교와 기독교》《종교와 공산주의》《요가의 원리와 수행법》《요가의 복음》《요가의 신비》《요가 수트라》《인도철학과 불교의 실천사상》《요가 우파니샤드》《요가학 개론》《실버 요가》《법구경 인연담》《바가바드 기타와 법구경》 등 30여 권이 있다.
【문화】개심사(開心寺)는 함흥(咸興)에서 북(北)쪽으로 약 100리(里)쯤 가서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명찰(名刹)이다. 이들 사찰(寺刹)이 있는 산의 이름부터 묘(妙)한 불연(佛緣)이 있으니, 천불(千佛)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천불(千佛)이라는 것은 과거의 장엄겁(莊嚴劫)에 있어서 1, 000의 부처님께 공덕을 쌓았다는 것이요, 또한 미래(未來)의 성숙겁(成熟劫)에도 1, 000의 부처님께 공덕을 쌓는 것이요, 또한 현재의 현겁(賢劫)에서도 1, 000의 부처님께 적덕(積德)하는 인연으로 있게 된 산이라는 것이다.
【문화】온정리(溫井里)로 내려와 노독(路毒)을 풀고 오늘은 다시 방향을 돌려 유점사(楡岾寺)로 가기로 한다. 여기서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고성(高城)이나 온정리(溫井里)에서 보현동(普賢洞)을 지나 백천리(百川里)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걸어 개잔령(開殘嶺)을 넘어 유점사(楡岾寺)를 찾데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 보고 유점사(楡岾寺)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보고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이 노도(路途)를 밟아야 하겠으나, 만일 내금강(內金剛)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마하련(摩訶衍)을 넘어 내무재령(內霧在嶺)을 넘는 것이다.
【문화】深谷寺에서 다시 乾鳳寺로 돌아오면 이제부터는 金剛山으로 들어갈 문제이다. 여기에서 잠시 건봉사의 옛 史蹟을 살펴보기로 한다。이곳은 高楲部 간성(杆城) 땅, 옛날 신라의 法興王 七년 庚子年에 阿道和尙이 금강산 남쪽에 위치한 이곳에 절을 이룩한 것이 乾鳳寺의 初刱이다。그 당시는 圓覺寺라고 했다고 한다。
【문화】향운(香雲) 정태혁(鄭泰爀)은 1922년 10월 23일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오도리에서 연일(延日) 정씨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나서, 2015년 4월 16일 미국 뉴욕에서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해 영결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후학과 제자들은 그해 6월 3일 동국대학교 정각원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추모하는 이들에게 정태혁은 입이 아니라 마음과 손으로 생동하는 학자였다.
【문화】금강산의 각 사암(寺庵)을 두루 순례하고 서울로 돌아와 차분히 쉬면서, 그동안 추석 중추절을 보내고 나니, 북한땅에 남은 옛 조상님들의 고혼(孤魂)이 잠결에도 곁에 와 슬퍼함에 문득 마음을 다시 먹고 두루 여타(餘他)의 각 지방에 있는 사암(寺庵)을 찾아 불전(佛前)에라도 고혼(孤魂)을 달래지 않을 수가 없다.
【문화】표훈사(表訓寺)의 뒷 뜰을 빠져나와서 꼬불꼬불 휘어도는 험로(險路)는 그야말로 양장험로(羊腸險路)다. 이러한 험로(險路)를 약 8정(丁)쯤 올라서서 방광대(放光臺)의 산복평지(山腹平地)를 나오면 여기에 정양사(正陽寺)가 있다. 여러 당우(堂宇)가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문화】향운(香雲) 정태혁(鄭泰爀)은 1922년 10월 23일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오도리에서 연일(延日) 정씨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나서, 2015년 4월 16일 미국 뉴욕에서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해 영결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후학과 제자들은 그해 6월 3일 동국대학교 정각원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면서 고인을 추모했다. 추모하는 이들에게 정태혁은 입이 아니라 마음과 손으로 생동하는 학자였다.
【문화】개심사(開心寺)는 함흥(咸興)에서 북(北)쪽으로 약 100리(里)쯤 가서 천불산(千佛山)에 있는 명찰(名刹)이다. 이들 사찰(寺刹)이 있는 산의 이름부터 묘(妙)한 불연(佛緣)이 있으니, 천불(千佛)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천불(千佛)이라는 것은 과거의 장엄겁(莊嚴劫)에 있어서 1, 000의 부처님께 공덕을 쌓았다는 것이요, 또한 미래(未來)의 성숙겁(成熟劫)에도 1, 000의 부처님께 공덕을 쌓는 것이요, 또한 현재의 현겁(賢劫)에서도 1, 000의 부처님께 적덕(積德)하는 인연으로 있게 된 산이라는 것이다.
【문화】금강산의 각 사암(寺庵)을 두루 순례하고 서울로 돌아와 차분히 쉬면서, 그동안 추석 중추절을 보내고 나니, 북한땅에 남은 옛 조상님들의 고혼(孤魂)이 잠결에도 곁에 와 슬퍼함에 문득 마음을 다시 먹고 두루 여타(餘他)의 각 지방에 있는 사암(寺庵)을 찾아 불전(佛前)에라도 고혼(孤魂)을 달래지 않을 수가 없다.
【문화】표훈사(表訓寺)의 뒷 뜰을 빠져나와서 꼬불꼬불 휘어도는 험로(險路)는 그야말로 양장험로(羊腸險路)다. 이러한 험로(險路)를 약 8정(丁)쯤 올라서서 방광대(放光臺)의 산복평지(山腹平地)를 나오면 여기에 정양사(正陽寺)가 있다. 여러 당우(堂宇)가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문화】온정리(溫井里)로 내려와 노독(路毒)을 풀고 오늘은 다시 방향을 돌려 유점사(楡岾寺)로 가기로 한다. 여기서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고성(高城)이나 온정리(溫井里)에서 보현동(普賢洞)을 지나 백천리(百川里)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걸어 개잔령(開殘嶺)을 넘어 유점사(楡岾寺)를 찾데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 보고 유점사(楡岾寺)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해금강을 먼저보고 유점사(楡岾寺)로 가려면 이 노도(路途)를 밟아야 하겠으나, 만일 내금강(內金剛)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마하련(摩訶衍)을 넘어 내무재령(內霧在嶺)을 넘는 것이다.
【문화】深谷寺에서 다시 乾鳳寺로 돌아오면 이제부터는 金剛山으로 들어갈 문제이다. 여기에서 잠시 건봉사의 옛 史蹟을 살펴보기로 한다。이곳은 高楲部 간성(杆城) 땅, 옛날 신라의 法興王 七년 庚子年에 阿道和尙이 금강산 남쪽에 위치한 이곳에 절을 이룩한 것이 乾鳳寺의 初刱이다。그 당시는 圓覺寺라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