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 ~ 1951]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법조인 출신의 북한 정치가이다. 호는 긍인(兢人). 함북 명천 출생.
그는
이인,
김병로와 함께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하던 변호사로,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 유명했다.
한성중학교, 보성전문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1907년에는 대한제국 제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일본에서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 뒤 독립운동가들의 변호와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 임금 인상 문제 등을 무료로 변론하였으며 1924년 보성전문학교 교장 취임과 조선인변호사 회장을 겸임 동아일보 사장직무대행등 각종 사회활동 하였다. 1926년 6개월동안 세계일주 여행간 것으로 유명하며, 이듬해 1927년에는
신간회 단체 주요간부로 활동하였다. 1943년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단파방송 밀청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광복 이후 1945년 8월
여운형,
박헌영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건준 부위원장을 거쳐 조선인민공화국 내각에서는 국무총리에 선출되기도 했다. 인공 해체 후 남조선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
남조선로동당등 활동하다가 탄압받자, 1948년 4월 남북협상차 북으로 건너간 뒤 정착하였다.
1948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의장(의회 의장)에 선출되기도 하였고, 김일성대학 총장이 되었다.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다가 1951년 8월 청천강에서 익사하였다. 북한의 여성운동가
허정숙의 아버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