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왕자의 난은
1398년 왕위 계승권을 에워싸고 일어난 왕자간의 싸움으로,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반란을 일으켜 반대 세력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방원의 난으로도 불리며, 그밖에 방석의 난, 혹은 정도전의 난, 무인정사(戊寅靖社)라고도 불린다.
제2차 왕자의 난이 동복(同腹) 형제간의 싸움이라면, 제1차 왕자의 난은 이복 형제간의 싸움이다.
한양 신도(漢陽新都)의 공역(工役)이 완료된 지 2년 후인 1398년(태조 7) 음력 8월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비밀리에 모의하여 태조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이유로 여러 왕자를 궁중으로 불러들인다.
이방원은 이를 정도전 등이 한씨 소생의 왕자들을 살육할 계획으로 해석하여,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분을 세워 10월 5일(음력 8월 25일)
이방의,
이방간 등 여러 왕자들을 포섭하고
이숙번,
민무구,
민무질,
조준,
하륜,
박포,
이지란 등 휘하 부하들을 시켜 군사를 일으켰다.
그 뒤 남은의 집을 습격해
정도전과
남은을 살해했다. 같은 시각에
박위,
유만수,
장지화,
이근,
심효생을 살해하였고(10월 6일, 음력 8월 26일) 변란의 책임을 세자와 정도전 일파에게 전가했다. 또한, 세자
이방석은 폐위하여 귀양 보내는 도중 살해하고, 이방석의 동복 형
이방번도 함께 죽여 버렸다. 이 변란으로 세자 이방석이 폐위되니, 다음 세자로 이방원을 만들게 된 것은 정세의 당연한 귀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