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사묘 건축물. 보물 제821호이고 정면 16칸, 측면 4칸의 고설집이다.
조선 시대 왕과 왕비· 공신 등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1421년(세종 3)에 정종의 신위를 모시고자 건립되었고, 건물의 규모는 태실 4칸에 양 옆 익실이 각 1칸이었다.
이후 170여 년을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08년(광해군 즉위)과 1667년(현종 8)에 다시 중건되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36년(헌종 2)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양식적인 면에서는 17세기 중기에 속한다.
건물의 구성 형식을 보면 4면 나지막한 돌담으로 두르고 남쪽과 동쪽·서쪽에 각각의 문을 만들어 제사 때 통로로 이용하였다.
또한, 의례의 절차를 거행하도록 만든 상월대 위에는 태실 4칸, 양 옆 익실 6칸을 두었다.
태실·익실을 합한 정전 부분은 다시 정전부·월랑부로 나누어지며, 익실 좌우에는 동월랑과 서월랑을 5칸씩 연결하고, 그 앞 일부에 전돌을 깔아 의례 에 따른 통로를 마련하였다. 월대의 가운데에는 건축의 중앙 축이 되는 신도를 두었다.
그리고, 신도의 끝에는 제관들이 의례의 절차를 거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월대를 두었다. 중앙 계단의 섬돌과 문설주에는 태극 무늬가 있고 색채는 청록색과 붉은색만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목적에 알맞도록 건물 전체의 구조와 장식·색채 등을 소박하고 엄숙하게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태조 선대의 4조인과 정종· 문종· 단종 외 기타 추존된 왕과 왕비의 위패가 15실에 봉안되어 있다.
종묘 영녕전은 서울 특별시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