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3 ~ 1536] 조선 전기의 무신. 자는 익부이고, 시호는 장양이다.
일찍부터 전쟁에서 군사를 쓰는 방법을 익혔다. 1491년 성종 때 만주족들이 국경 지방을 침범하자 이에 나라에서는 군사를 보내 만주족을 토벌하게 하였다. 그는 허종을 따라가 허종의 부하로 맹활약하였다. 다음 해에 무과 시험을 봐서 합격하였고, 훈련원에 들어가 무예 를 연습하였다.
1506년 연산군을 몰아 내고 중종을 왕으로 세우는 중종 반정이 일어났다. 연산군은 왕으로 있는 동안 많은 선비들을 죽이고, 왕에게 유교 경전을 강의하는 경연 을 없애고, 나라의 중요한 교육 기관인 성균관을 오락 장소로 바꾸어 매일 잔치를 베푸는 등 나라 일은 살피지 않았다. 중종 반정은 연산군의 포악한 정치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대신들이 일으킨 사건이다.
정윤겸은 중종 반정에 참여하여 성공시켜, 그 공으로 병충분의정국 공신의 칭호를 받고, 군기감의 첨정에 뽑혔다. 그는 첨정으로 있으면서 무기 나 깃발 등을 만드는 일을 보았다. 다음 해에는 통정 대부 로 당상관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서 간성 지방의 군수에 임명되어 행정을 맡아 보았다.
1510년 중종 때 삼포 지방에서 일본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킨 삼포 왜란이 일어났다. 일본인들은 삼포에 살면서 조정의 명을 자주 어겨 나라에서는 이들의 세력을 꺾으려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곤 하였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군사를 끌어 들여 폭동을 일으키고 제포와 부산포를 자기네 손에 넣었다. 그러나 곧 조선군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이들은 모두 추방되었다. 삼포 왜란이 끝난 뒤 정윤겸은 웅천 지방의 부사로 임명되어 삼포 왜란 으로 파괴된 마을을 다시 세우고 민심을 바로 잡는 데 힘썼다. 그 뒤 함경 남도 병마 절도사로 가게 되자 북청에 성을 쌓아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1522년에는 전라도 수군 절도사로 임명되어 비상 사태에 대비하여 병선과 무기를 수리하였다. 그러던 중 왜구가 중국 명 나라의 땅에 들어가 떼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사람과 재물을 빼앗는 등 갖은 행패를 부렸다. 그는 돌아가는 왜구를 격퇴하였고, 그 공으로 나라에서 활· 화살과 의대(옷과 띠)를 받고, 명나라로부터 백금을 받았다. 이어 훈련원의 도정이 되었다가 1525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평안도 병마사가 되었다. 한때 무고한 죄로 횡성에 귀양갔으나, 곧 죄가 풀려 동지 중추부사를 거쳐 삼척 부사가 되었다.
성품이 곧고 바르고, 생활이 청렴하며, 장수로 손꼽혀 남과 북 국경 지방의 장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