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3 ~ 1306] 고려 후기의 명신(名臣)이자 학자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 수용자이기도 하다.
안향은 1243년(고려 고종 30) 경상도 순흥부(順興府, 현 영주시 풍기)의 죽계(竹溪) 상평리(上坪里) 학다리[村鶴橋]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유(裕)였으나 뒤에 향(珦)으로 고쳤다. 그러나 조선 문종으로 인하여 피휘(避諱)하여 초명인 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인데, 이는 그가 만년에 흠모한 송나라의 회암(晦庵) 주희(朱喜)의 호를 본 뜬 것이다. 그의 부친 부(孚)는 순흥부의 향리로서 의업(醫業)으로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였다. 어머니는 강주우씨(剛州禹氏)로 예빈승(禮賓丞) 윤성(允成)의 딸이다.
1260년(고려 원종 1)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고,
1270년 삼별초의 난 때 강화(江華)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한 뒤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다.
1275년(고려 충렬왕 1) 상주판관(尙州判官) 때 미신타파에 힘썼고,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郞)·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를 거쳐 국자사업(國子司業)에 올랐다.
1288년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유학제거(儒學提擧)가 되고, 그 해 왕과 공주를 호종하여 원나라에 들어가 연경(燕京)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하여 돌아와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였다.
1294년 밀직사부지사로서 동남도병마사를 겸해 합포진(合浦鎭)에 부임하였고, 밀직사사를 거쳐
1296년 첨의참리세자이사(僉議參理世子貳師) 등을 지냈다.
1299년 수국사(修國史),
1304년 첨의시랑찬성사판판도사사(僉議侍郞贊成事判版圖司事)에 이르렀다.
한편, 섬학전(贍學錢)이란 육영재단(育英財團)을 설치하고, 국학대성전(國學大成殿)을 낙성하여 공자의 초상화를 비치하고, 제기·악기·육경(六經)·제자서(諸子書)·사서(史書) 등을 구입하여 유학진흥에 큰 공적을 남겼다.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문성(文成)으로,
소수서원(紹修書院)과 장단의
임강서원(臨江書院) 및 곡성의
회헌영당(晦軒影堂)에 제향되었다.
월암동에 있는
안자묘(安子廟)는 그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황해도 연백군 화성면 송천리에 있던 것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서울시 마포구 창전동으로 옮겼다가,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 참고문헌 : 『高麗史』, 『梅軒先生年譜』, 『國朝文科榜目』, 『의왕의 전통과 문화』(의왕시,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