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경종 때 노론의 세력을 이끌다
신임사화가 일어나 소론 세력에 의해 쫓겨난 4명의 대신. 다시 말해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 네 사람을 가리킨다.
노론과
소론은 정치적인 파벌로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었다. 숙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경종(재위 1720~1724)은 뒤를 이을 아들이 없고 병치레가 잦았으므로 뒤를 이을 후계자를 빨리 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 노론의 영의정 김창집과 좌의정 이건명, 영중추부사 벼슬의 이이명과 판중추부사 벼슬의 조태채 등 네 사람이 뒤에 경종의 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고 나랏일을 대신 맡아서 처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1721년에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고 나랏일을 대행하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노론과 소론 의 관계는 더욱 나빠져서 대립이 심해졌고, 그 결과 연잉군의 정무 대행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소론파의
김일경 등은 노론파의 4대신을 4명의 원흉이라고 상소를 올렸고, 또
목호룡을 시켜 4대신이 경종을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거짓으로 고해 바치게 함으로써 노론파는 정치적인 권력 을 잃게 되었고, 4대신은 1722년에 처형되었다. 이 일과 관련하여서 노론파에 속한 몇 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변방의 외딴 곳으로 가 귀양살이를 하였다.
이 사건을 신축, 임인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신임사화라고 부른다.
그 뒤 연잉군이 경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영조가 되자 죽은 4대신을 복권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