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65] 중국 춘추 시대 말기 월(越)나라의 제2대 왕(재위 기원전 496~기원전 465).
월나라는 구천의 아버지 윤상 때부터 북쪽에 가깝게 붙어 있는 오나라와 원수의 관계에 있었다. 두 나라의 사이가 얼마나 험악했던지 원수지간이 만난다는 뜻의 고사인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생겼다.
기원전 496년, 구천은 아버지가 죽은 뒤 왕위를 이어받자마자 오나라의 왕 합려와 싸워 그를 죽였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섶나무 위에서 자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2년 후인 기원전 494년에 구천은 부차와의 싸움에서 져서 회계산에 숨었다가 버티지 못하고 나와서 자신은 부차의 신하가 되고 그의 아내는 첩이 되어 항복할 것을 빌었다. 용서를 받고 돌아간 후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20년 동안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 가 강해지도록 힘썼다. 이것이 섶에 눕고 쓸개를 맛보며 마음 먹은 일을 이루려고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의 고사 성어 '와신 상담(臥薪嘗膽)'의 유래가 되었다. 그리하여 구천은 신하 범여 등의 도움을 받아 기원전 473년에 끝내 부차를 꺾어 자살하게 하고, 오나라를 멸망시켜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씻었다.
그 뒤 월나라는 세력을 뻗쳐 북쪽을 치고 올라가 제(齊)·진(晉)과 주왕으로부터 방백의 칭호를 받고 패왕이라 일컫게 되었다. 그러나 구천은 명신 범여를 내쫓아 버리고, 대부종을 자살하게 하는 등 나이가 들어서는 지각 이 없는 행동을 많이 하였다.
최근에 후베이성 장링의 한 무덤에서 '월왕 구천 자작 용검'이라는 글이 새겨진 아름다운 동검이 출토되었다.